본문 바로가기

우리가 알아야할것들

우리가 독립운동을 한이유는 우리때문이다

 

 

"우리가 독립운동을 한이유는 우리때문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지긋지긋한 일본으로 부터 독립을했다.

일본의 수많은 악행은 우리가 교육을 비롯해 많은 곳에서 배웠고, 알고있다. 그들은 남녀노소 할것없이 그들의 나라를 위해 우리나라 많은 선조들을 말에 담기도 힘들정도로 괴롭혔고,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도 악행을 서슴치 않았다. 그들은 아직도 잘못을 모르고 그 후예들까지 뻔뻔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조금있으면 3.1절 100주년이다. 3.1절 우리나라 선조분들이 나라를 빼앗기는 침통함과 독립을 해야한다는 간절함으로 전국각지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날이다. 그들은 왜 목숨을 바쳐가며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항했을까?

우리때문이 아닐까? 선조들의 자식들 그자식들의 자식들 바로 우리다. 3.1절의 대표적인 인물인 유관순열사님은

우리에게 알려진 유관순 누나는 말그대로 젊다 못해 어린나이에 3.1절운동을 하였고, 일본순사들에 의해 수많은 고문을 못이기고 옥사하셨다.

그이후로 많은 독립운동투사들께서 오로지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내놓으시며, 나라를 찾기위해 애쓰셨다.

그 독립운동에는 크기가 없을 것이다. 어느사람은 폭탄을 던지셨다고해서 큰일이 아니고, 작은곳에서부터 큰곳까지

독립운동을 크기로 대하는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어렸을때부터 우리나라의 안좋은 역사들을 배운다. 하지만 여지껏 그역사가 좋았던 시절은 없다. 부강했던 시절은 거의 없다. 매일을 주변강대국들에 의해 핍박을 받아왔으며, 안으로는 많은 간신배들과 탐관오리들로부터 백성들은

피마르는 시절을 보내왔다. 그 백성들 지금은 시민들은 지금도 힘들어 하고있다.

지금은 어떤가, 비록 우리손으로 나라를 찾지 못했지만, 지금 우리들은 선조들에게 자랑스러워 할수있는가?

그들이 찾은 이나라를 어떡해 만들어 가고있는가. 헬조선이라 부르지 않았나? 이민이 답이라 하지 않았나?

우리나라는 석유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이고, 자원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나라이다. 그저 삼면은 바다로 둘러 쌓여있고, 북으로는 우리를 위협하는 공산당들이 자리잡고있었다. 그 위기속에 또 우리에 어른들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업적을 쌓으셨다. 누구는 그런다 우리나라는 위기에 강하다고, 우리는 일본으로 부터 식민지 지배를 겪었고, 그후로 둘로 나뉘어져 민족의 대참사 전쟁을 겪었다. 우리 형제들끼리 말이다. 그리고 IMF를 겪었고, 그때 보여준 국민들의 하나됨은 누구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일이고 먼훗날 역사가 될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은어떤가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것없이 남 헐뜯기에 바쁘고 자기배 채우기에 바쁘다. 배우고 배우신 양반들이 하는짓은 초등학생 저리가라다. 거기에 젊은 우리들은 삼포세대, 헬조선, 등등

나라를 비하하는 신조어가 늘어나고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 허덕이고있고, 어느 한쪽에서는 일본으로 여행을 다니며 SNS에 그 흔적을 남기기 바쁘다. 어떤 한 날에는 다케시마 즉 독도 후원기업이라는 이름으로 기업 명단이 떠올랐을때 불매운동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잠시뿐 지금 젊은이들은 오사카, 도쿄, 후쿠오카 등 일본 여러곳을 다니고 있다.

여행을 다니는게 비난 받을 일이냐고? 아니다. 하지만 모순적이지 않은가? 위안부 할머님들의 일로 일본을 욕하면서

그 일본에 가서 돈을 쓰고 오고, 그럼 그돈은 어디로 가는가? 우리나라도 돌아오나? 일본은 먹거리, 경치, 역사적 경관

관광에 빼놓을수 없는 나라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던 선조들이 이모습을 본다면 그리 좋지만은 않으실거란 생각을 한다. 너무 꼰대적 마인드라고 욕할수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한다.

만약 일본이라는 전범국가가 독일처럼 희생당한 유태인들에게 했듯이 우리나라에게 그리고 중국 및 여러나라에게 진심어린사과를 한다면, 그 누구도 더이상 과거를 운운하며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아니지 않은가 아직도 뻔뻔하게도 군대를 운영하며, 어떡해 하면 더 강해질까 아직도 그생각뿐인게 일본이라는 나라이다.

우리가 3.1절이 다가오는 만큼 매체에서도 이야기하듯 태극기를 계양하지 못하더라도 한번쯤은 쉬는날이 아닌 우리나라 선조들의 말로표현 못할 그 아픔들과 괴로움을 함께하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잠시라도 아주 잠시라도

"우리가 독립운동을 한이유는 우리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안중근의사 어머님(조마리아 여사)이 아들인 안중근 의사님이 옥중에 계실떄 편지를 쓰신것을 남기고 글을 마치겠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것이다.

네가항소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맘 먹지말고 죽어라!

아마도 이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것이다. 네 수의옷을 지여 보내니 이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았으니, 다음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세상에 나오거라."

 

난 31살에 뭐했지? 그렇게 2월14일 안중근의사님은 떠나셨고, 그날은 우리에게 발렌타인데이로 더 유명하다.